십일조와 나눔
- Oikos Atlanta
- 2025년 6월 3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일 전

질문 기독교인은 수입의 10%를 교회에 바쳐야 하나요? 십일조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요? 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배경
십일조(tithe, 10분의 1)는 구약에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창 14:20), 야곱이 하나님께(창 28:22) 십분의 일을 드렸고, 레위기 27:30에서 율법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님은 십일조 '비율'보다 마음의 태도를 강조하셨고, 바울은 구체적 비율보다 관대함의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이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집니다.
🟤 복음주의 관점 (Evangelical View) 헌금은 마음에 정한 대로 관대하고 즐겁게 드려야 합니다.
성경적 원리:
1.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 —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2. 십일조의 원리 — 많은 복음주의 교회는 십일조(10%)를 '출발점'으로 권장합니다. 이것은 율법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구체적 행위입니다
3. 마음의 태도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4. 뿌리는 자의 원리 —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느니라"(고후 9:6)
5. 말라기의 도전 —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보라"(말 3:10) —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하신 곳
주의사항:
헌금은 하나님의 축복을 '사는' 수단이 아닙니다. "번영 복음(prosperity gospel)"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헌금은 감사의 표현이며 신뢰의 행위입니다.
실생활 적용:
갑자기 10%를 드리는 것이 부담된다면, 현재 드리고 있는 비율에서 1-2%씩 점진적으로 늘려보세요. 헌금을 예산의 '나머지'가 아니라 '첫 번째 항목'으로 놓아보세요.
🟢 진보적 관점 (Progressive View) 나눔은 돈을 넘어 시간, 자원, 특권을 포함하며, 체계적 빈곤과 불의 해소로 확장됩니다.
나눔의 확장된 비전: - 돈 너머 — 시간, 재능, 관계, 영향력, 특권 모두가 나눔의 대상.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행 3:6) - 정의로서의 나눔 — 단순한 자선(charity)을 넘어 정의(justice)로. 빈곤의 원인이 되는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근본적인 나눔 - 교회 너머의 나눔 — 교회 헌금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사회 단체, 구호 기관, 환경 단체 지원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 - 초대교회 모델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4-45). 이것은 사유재산 폐지가 아니라, 공동체적 관대함의 문화 - 특권의 나눔 — 사회적 지위, 교육, 네트워크 등의 '보이지 않는 자산'도 나눔의 대상
돈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은 돈에 대해 기도 다음으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핵심은: 돈이 주인이 되지 말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핵심 성경 구절: - 사도행전 2:44-45 — 초대교회의 나눔 - 누가복음 12:48 —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 - 마태복음 25:35-40 —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
실생활 적용:
이번 달 예산을 점검할 때, "나의 돈은 나의 가치관을 반영하는가?"를 물어보세요. 소비, 저축, 나눔의 비율이 여러분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함께 나눌 질문 1. '교회 헌금'과 '사회를 위한 나눔' — 어떤 것이 더 성경적인가요? 아니면 둘 다? 2. 돈에 대한 여러분의 가장 큰 두려움이나 걱정은 무엇인가요? 3. '십일조 10%'가 출발점이라면, 우리의 '도착점'은 어디일까요?
두 관점의 다리 두 관점 모두 관대함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 주심(giving)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주는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차이는 나눔의 '범위'에 있지, '필요성'에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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