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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나요?

최종 수정일: 2월 28일

왜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나요?

질문 선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고통과 악이 존재할까요?


배경 이 질문은 신학에서 '신정론(theodicy)' — 하나님의 선하심과 악의 존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 이라 불립니다. 에피쿠로스(기원전 341년)부터 현대의 무신론자들까지, 이 질문은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깊은 고민 중 하나입니다. 성경 자체도 이 질문과 싸웁니다 — 욥기 전체가 이 주제에 할애되어 있으며, 시편의 3분의 1 이상이 탄식 시편입니다.


🟤 복음주의 관점 (Evangelical View) 먼저 정직한 출발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선한' 사람은 없습니다(롬 3:10-18).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고통은 죄의 결과이며, 고통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은혜의 존재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들: 1. 자유의지 — 하나님은 사랑의 관계를 원하셨고, 진정한 사랑은 자유를 전제합니다. 자유의지의 오용이 악을 낳았습니다(창 3장). 2. 훈련과 성장 —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히 12:6). 고난은 믿음을 정금처럼 연단합니다(벧전 1:6-7). 3. 더 큰 선을 위해 —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렸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 로마서 8:28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약속합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하셨습니다. 5. 영원한 관점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그러나 복음주의자들도 인정합니다:

모든 고통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욥기의 결론에서 하나님은 욥의 "왜"에 직접 답하시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십니다(욥 38-41장). 때로 답은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실생활 적용: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성급히 말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함께 울고(롬 12:15), 그다음에 소망을 나누는 것이 성경적 순서입니다.


🟢 진보적 관점 (Progressive View) 고난은 깊은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 — 우리와 함께 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악을 일으키지 않으시지만 인간의 연민과 연대를 통해 치유와 정의를 이루십니다.

진보적 신학은 '전능한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프레임 자체에 질문을 던집니다. 위르겐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하나님을 "고통받으시는 하나님"으로 제시합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 밖에서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한가운데 들어오셨음을 보여줍니다.


핵심 강조점: - 하나님은 고통의 원인이 아니시다 — 자연재해, 질병, 폭력은 하나님의 '뜻'이나 '벌'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 하나님은 고통 속에 계시다 —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전에 예수님은 우셨습니다(요 11:35) - 우리는 고통을 줄이도록 부름받았다 — 불의한 구조, 빈곤, 차별을 바꾸는 것이 신앙의 응답 - 고통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 "고통을 통한 성장"이라는 말이 억압의 정당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핵심 성경 구절: - 시편 22:1 —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도 이 시편을 인용하심) - 요한복음 11:35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로마서 8:38-39 —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실생활 적용:

고통 앞에서 '설명'보다 '함께함'이 먼저입니다. 동시에, 막을 수 있는 고통을 막기 위해 행동하는 것 — 불의에 맞서고, 약자를 돕고,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 — 이 신앙의 실천입니다.


함께 나눌 질문 1. 고난 앞에서 '이유'를 찾는 것과 '함께하심'을 느끼는 것 — 어떤 것이 더 위로가 되나요? 2.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말과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말 — 어떤 차이가 있나요? 3. 고통받는 사람 옆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두 관점의 다리

두 관점 모두 동의하는 것 — 하나님은 선하시다. 고난은 현실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다(계 21:4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리니"). 차이는 '지금 여기서' 고통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있습니다. 어떤 관점을 취하든, 고통받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점에서 두 관점은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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